장용순: 현대 건축의 철학적 모험 - 01.위상학 books


현대 건축의 철학적 모험 – 01. 위상학, 장용순 저, 미메시스, 2010


 

현대 건축에 관한 탁월한 해설서


좋은 책을 발견했다. ‘위상학’이라는 단어는 생소했지만, 그 관점은 이미 우리가 건축을 바라보는 시각에 잠재되어 있었음을 알게 했다. 그리고, 그 다음을 고민하게 했다. 4권의 묶음으로 완성될 장용순의 연작 중 첫 번째, 「현대 건축의 철학적 모험 – 01. 위상학」은 적어도 현대 건축에 관한 한은 신선하고 탁월한 해설서임에 틀림없다.

장용순은 <공명>으로써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제목 그대로 현대 건축은 철학적인 모험을 통해 서로 다른 분야를 공명한다. 때론 시간을 뛰어넘어 공명한다. 죽은 르 꼬르뷔지에와 루이스 칸이 산 렘 콜하스와 공명한다. 전혀 상관없는 건축이라 생각했던 대상들끼리도 저자의 해석 내에서는 서로 공명하고 있다.

여러 <공명>을 통해, 혹은 <공명>을 위한 결론은 책의 초반부에 이미 제시되고, 내내 반복되면서 우리를 세뇌시킨다: 관계, 관계 그 자체, 순수 관계, 잠재적 차원에서의 관계, 관계의 그물망이 만드는 효과. 그의 비유를 빌리면, ‘축구의 규칙을 모른 채 축구 경기를 보면서 축구의 규칙을 추론해’내는 행위. 철학적으로 풀면, 개체와 형태 자체만으로는 의미를 갖지 않고 오로지 구조 안에서, 관계로부터 실체가 형성된다는 것. 이것이 저자가 현대 건축을 바라보는 ‘위상학’적인 관점의 정의다.

저자가 보기에 현대 건축이 그토록 다양할 수 있는 것은 위상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책에서 잠깐 언급되는 벤 판 버클(UN Studio)에 대한 비판에서 보듯이, 위상학적 사유는 마찬가지로 일련의 현대 건축에 대한 비판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저자는 베이겔의 다음과 같은 글을 인용한다. (21세기의 서울을 살아가는 건축인들은 꽤 공감할만한 글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물체의 강조에 염증을 느낀다. 오히려 우리는 물체 자체보다는 물체와 물체 사이에 존재하는 빈 공간에 대해 더 관심이 있다. 건축의 존재 이유는 공간이지 물체가 아니다. 최근의 건축은 물체를 강조하여 부각시키려는 추세가 압도적이며, 건축의 중심 요소로서의 공간은 그 의의를 상실하고, 논의의 목록에서조차 사라져 버렸다. 이는 건축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저자가 보기에, 위상학적 인식은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것이며, 동시에 이질성∙복합성 따위의 단어들로 대변되는 복잡해진 관계를 가진 현대 도시에서는 필수적인 사고다. 그는 위상학적 관점에서 공간 구조를 수학적으로 공식화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라고까지 주장한다.

확실히 위상학적 사유는 관계 자체를 사고하며 '연산'의 방법론을 추구하게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건축 혹은 다양한 건축을 향해 가는 길처럼 보인다. 또한 그러한 체계의 사유는 어느 날 툭 던져진 하나의 사조 같은 것이 아닌 보편적인 원리라는 저자의 논증은 공감할만한 것이다. 다만,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책에서 줄곧 언급되는 르 꼬르뷔지에와 렘 콜하스를 비롯한 일단의 현대 건축가들은 이미 한 시대를 풍미했던 주인공들이다. 그렇다면 과연 다음 세대의 건축가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어떤 것일까? 위상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새로운 연산의 건축방법론을 탐구하는 것일까? 혹은 변수를 다양화시켜 새로운 다이어그램의 변이를 만들어내는 것일까? 이 책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으로 읽혀지지는 않으며, 한편으론 <공명>을 거친 건축에 대한 시야가 오히려 어딘가로 한정되어버린 듯한 아리송함을 갖게 한다. 다만, 이 책이 4권까지 이어질 연작 중 일부라는 점에서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다. 이후의 저작들을 통해, 단순히 현대 건축에 대한 일련의 해설서로 남을 것이 아니라, 미래 건축의 전망에 대한 작은 단서를 던져주는 연작물이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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