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천: 콘크리트 유토피아 books

「콘크리트 유토피아」, 박해천, 자음과모음, 2011


'아파트를 바라보는 다중의 시선, 혼종의 사유'. 표지에 적힌 소개글은 이 책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저자는 특유의 서사적 문체를 들고 아파트를 둘러싼 전방위적 현상을 휘젓는다. 책은 크게 둘로 나뉘는 형식에서 1부는 '(가상적) 다중의 시선'을, 마치 렘 콜하스Rem Koolhaas의 「Delirious New York」을 연상시키는 픽션 형식으로, 2부는 '혼종의 사유'를 성실한 리서치를 통한 보고서의 형식으로 각각 담고 있다.

형식은 나뉘지만, 핵심은 하나다. 우리가 흔히 부정적인 감성으로 대하는 삭막한 콘크리트 아파트 숲의 현실에, 굳이 '유토피아'라는 제목을 붙여줌으로써, 이 현실과 얽힌 우리의 욕망을 솔직하고 과감하게 들춰보자는 것이다.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아파트를 원해왔고, 원하고 있다. 그것은 아파트가, '어떤' 아파트의 경우는 특히, 단순히 살기 위한 공간이 아닌 매우 강한 사회적 상징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것은 이 상징물이 원하는 바를 따라 움직이게 되어 있다. 저자가 '혼종의 사유'를 시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1962년, 마포아파트가 "미래에서 날아와 불시착한 미확인 비행물체 편대"처럼 모습을 드러낸 이후 줄곧 아파트는 "매혹의 요체"였다. 전근대적 습속과 급격하게 단절하고 새로운 모더니티를 받아들여야 했던 남한의 현실에서(혹은 그러고자 했던 군인-정치가들의 의도에서), 아파트는 이에 대한 촉매제임과 동시에 그 스스로 진화하고 주변의 것들을 지배하려하는 주체적 모델이었다. 그리고 7,80년대의 '영웅시대'적 분위기에서는, 아파트가 생산하는 모더니티를 흡수하고 다시 확대재생산하는 인간형을 '(신)중산층'이라고 명명함에 암묵적인 동의가 이루어진다.

... 나(아파트)는 감각의 생산양식을 구축해 거주자들이 특정한 시각성의 논리를 체화하도록 독려했고, 일상성의 프로그램을 제공해 독특한 구별짓기의 인지적 알고리즘을 내면화하도록 만들었다. ... 신중산층이 나를 쌓아올린 것이 아니다. 어느 시점에서부터인가 내가 그들을 빚어냈다. 그들의 욕망은 내 피조물이었다. - 본문 67p., 아파트의 자전적 시각에서

1987년 처음으로 실시된 대통령 직선제 선거에서 다시 군인-정치가 출신의 인물이 당선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콘크리트 아파트로 채워진 유토피아의 세계관에서 보면 확실히 그렇다. 우리 세대는 항상 기성 세대들과 삶의 방식을 구분지으려하고, 지식인들은 온갖 '세대론'을 쏟아내며 우리 세대를 부추기는 담론을 생산하지만, 결국 우리 세대 삶의 원초적인 욕구는 기성 세대들의 그것과 한 지점에서 만난다. 어디에서? 바로 아파트에서. 이런 점에서 아파트는 훌륭한 정치적 도구이자, 문화적 주체이다.

심지어 아파트는 "주거를 위한 기계"다. 따라서 우리의 모든 일상성에 관여한다. 이에 대한 전개는 대략 이런 식이다. 예컨대, 전통적 생활방식에서 "부부의 취침과 휴식이 이뤄지는 내밀한 공간인 동시에 가족의 식사, 외부인의 응접, 텔레비전 시청 등을 수행하는 가족 공통의 공간"이었던 안방이, 아파트에서는 "이와 같은 기능의 상당 부분을 거실과 식당에 양도하고, 안방을 부부 전용의 공간으로 재구성"하게 된다. 이같은 경향은 1980년대에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이와 함께 부부 사생활의 독립성이 부각되면서 여성 잡지에 성性에 관한 담론이 노골적으로 급증하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담론은 다시 안방의 구성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부부 성생활의 "무대"가 되는 침대가 필수품으로 취급되고, 이불 등을 수납하는 장롱은 붙박이장으로 간소화된다.

지난 반 세기 동안 그러했듯이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지금도 진화 중이다.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면서 매혹에 매혹을 더한다. 강남에서, 과천으로, 분당으로, 그리고 용인으로. 이를 바라보는 우리 삶은 아파트와 벗어날 수 없는 변증법적 관계에 놓여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 과정을 전반적으로 분석하는 저자의 시각은 그 문체만큼이나 탁월하고 독특한 것임에 틀림없지만, 결국 그것은 보통 사람들의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다만, 저자는 보다 솔직하게 서술하고 많은 분석작업을 수행했을 뿐이다. 이 점이 바로 이 책을 돋보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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