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재: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 books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 이원재 저, 어크로스, 2012

 

세상이 이상해졌다. 난데 없이 부랑자 같은 이들이 “Occupy the Wall Street!”을 외치면서 딱히 주인도 없는 거리를 말 그대로 점령하고는 우리가 사는 세계를 ‘1% vs. 99%’로 정의 내렸다. 그랬더니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도 이에 동조하며, <맨큐의 경제학>으로 유명한 그레고리 맨큐의 강의실을 박차고 거리로 나온다. 비슷한 시기, 유럽에서는 농담 같은 이야기도 들려왔다. ‘그리스’라는 국가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고. 노동자와 학생들의 과격 시위와 불안해진 치안 탓에, 풍부한 문화유산을 간직한 이 나라는 어느새 여행 기피 대상으로 전락했다.

더 이상한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구도의 변화에 있다. 피 터지고 박 터지게 싸워야 할 유력 대선후보 3인의 경제정책이 모두 한 마디로 통일된다. “경제민주화”. 심지어 서로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으니 시간을 끌 것 없이 얼른 정책으로 만들어 국회로 가자고 한다. 이럴 수가. 확실히 ‘747’은 추락했고, 거기에 탑승했던 ‘줄푸세’는 고래밥이 된 모양이다. 세상이 변했다.

설명이 필요하다. 왜 갑자기 세상이 이렇게 이상해졌냐고. 그랬더니 원래 이상한 세상이 그나마 정상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라며, 오히려 올 것이 왔다는 대답이 들린다.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의 저자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이원재도 그같은 주장을 하는 이 중 한 명이다. 그는 지금 안철수 후보의 캠프에서 정책기획팀장으로 맹활약 중이란다. ‘경제민주화’와 관련하여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성벽 안 경제와 성벽 밖 경제’. 저자가 진단하는 대한민국이란 ‘이상한 나라’의 증상은 이렇게 요약된다. ‘성벽 안 경제’는 삼성전자∙현대자동차 등으로 대표되는 수출대기업과 금융∙컨설팅 서비스 부문으로, 대체로 1인당 국민소득 이상의 수입과 높은 생산성을 상징한다. ‘성벽 밖 경제’는 그 나머지다. ‘성벽 안’으로 진입에 실패한 이들뿐 아니라, 이를 거부한 창업자들 역시 여기 속한다. 50대 중반 이후 은퇴하거나 이직한 사람들은 이전에 ‘성벽 안’에 있었더라도 거의 대부분 여기로 밀려난다. ‘성벽 밖’은 소득과 생산성이 낮은 경제다.

그 동안 우리는 생산성 높은 성벽 안 경제가 성벽 밖 경제를 부양한다는 패러다임에 익숙했다. 이를 굳게 믿었기에 성벽 밖 사람들은 소외 받고, 고통을 감내하고, 때론 희생을 강요 받았다. 낙농업종사자, 중소기업가, 영세자영업자,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 그렇게 해서라도 성벽 안의 생산성을 높여주면, 거기서 창출된 부가 성벽 밖으로 넘쳐흐를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이른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다.

그러나 저자는 낙수효과란 없다고 단언한다. 성벽 안에서 창출된 부는 그 안에서만 맴돈다. 글로벌 대기업은 대국민적 비호 아래 쑥쑥 성장했지만, 그 과실은 제대로 분배되지 않는다. 이들 기업은 한국 인구의 단 1%만을 고용하고 있으며, 그 기업 경제가 생산하는 부가가치 역시 한국 경제의 11%에 불과하다는 통계치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럼 그 나머지는?

진짜 불행은 그 나머지 경제영역이 성벽 안 경제, 즉 글로벌 경제영역의 정글식 시장만능주의에 철저히 노출되어 이를 받아들여왔다는 사실이다. 한국사회는 냉담하게 이야기해왔다. 당신들도 저 잘나가는 대기업처럼 혁신과 경쟁을 통해 성장해야 한다고. 그래서, 결과는? 그 어디에도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배틀로얄'이다.

저자가 생각하는 문제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성벽 안 경제의 부가 사회에 인위적으로 배분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대기업의 치열한 경쟁논리를 전면 부정하기도 어렵다. 다만, 성벽 밖에는 정글이 아닌 다른 생태계가 필요하다. 배틀로얄의 결말은 파멸과 상처뿐인 생존이다. 따라서 지금은 새로운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인식 전환이 필요한 때다.

애덤 스미스는 개개인의 이기심에 따른 경제행위가 ‘보이지 않는 손’, 시장을 통해 결국 공익으로 전환된다는 전복적인 논리를 주창했다. 틀렸다. 이 시장만능주의는 자신의 경제행위가 사회에 미치는 해악을 보이지 않게 만들었을 뿐이다. 우리는 월가의 무책임한 돈놀이를 똑똑히 목격한바 있다. 한때 한국의 벤치마킹 대상이었던 아일랜드∙아이슬란드 경제는 붕괴 상태다. 과잉생산과 과소비는 세계적인 환경 위기를 불러왔다. 애덤 스미스를 추종한 ‘호모 이코노미쿠스’ 개개인의 경제행위 동력이었던 ‘탐욕’이 부른 결과다.

저자는 이제 ‘탐욕’이 아닌 ‘이타심’, ‘협동’, ‘호혜주의’ 등을 새로운 경제의 동력으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 가능할까? 저자는 이미 ‘착한 소비’로 대표되는 사회적 소비, 협동조합, 기업의 사회책임 경영(CSR), 사회책임투자(SRI), 사회적 기업 등의 형태로 새로운 동력이 구현되고 있다고 본다. ‘이상한 나라’를 탈출할 희망과 해법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국가의 비효율성과 시장의 비인간성, 두 가지 다 경험한 한국이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길이다.

확실히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은 새로운 처방을 제시하고 있다. ‘경쟁이냐, 보호냐’, 혹은 ‘집중이냐, 분배냐’의 논쟁구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거나, 최소한 한 발 비껴선 시각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측면이 있다. 어쩌면 현재 저자가 안철수 후보 캠프에서 활동한다는 사실이 이해되기도 한다. 단, 그것은 새로움 뿐만 아니라, 그만큼 애매한 문법을 사용한다는 의미에서도 그렇다. ‘탐욕’의 패러다임을 ‘선의’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담론은 언뜻 획기적이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실행방식 없이는 가능성에 대한 확신을 주기 어렵다. 국민연금의 사회책임투자 등이 언급되고 있지만, 대체로 ‘선의’의 경제로의 전환은 다시 ‘선의’로 이뤄질 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돌고 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현재 안철수 후보의 정책에 가해지는 비판과 유사하다.

거대한 전환을 준비하려는 세력에게 세밀함과 치열함이 빠지면 곤란하다. 저자가 말하는 ‘탐욕’의 대선을 치른 것이 불과 5년 전이다. 단순히 선언적∙추상적 단계에 머물러서는 일시적으로 잠잠한 시장만능주의의 반격을 면치 못한다. ‘이상한 나라’에 그 뿌리는 생각보다 깊다. 고래밥이 된 ‘줄푸세’가 다시 요나처럼 살아나올지 아직 두고 봐야 할 일이다.


덧글

  • Mj 2012/11/08 21:12 # 삭제 답글

    잘 읽고 갑니다 이책 읽고서도 명확한 생각을 내리는게 어려웠는데 글 정말 잘쓰시네요
    앞으로 저도 이렇게 써보려고 노력해야겠어요 ㅎㅎ
  • 허남설 2012/11/09 00:13 #

    그냥 독후감인데요 뭘ㅋㅋ 방문해주시고 칭찬성 댓글도 달아주시고... 감사합니다(_ _)
  • 벨루와 2012/11/13 16:57 # 삭제 답글

    이원재 전 소장님의 대학생 팬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책중 하나여서, 여러번 읽고 저자와의 간담회도 가고 그랬는데
    치우치지 않은 중립적인 시선을 가지신 것 같아 부러우면서도 대단하다고 느꼇습니다.
    윗분이 말씀 하신 것처럼 끝내주는 독후감 같습니다. ^^
  • 허남설 2012/11/13 19:16 #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원재씨는 언론이나 이 책을 통해서만 접했는데, 기회되면 강연회같은 것 저도 가보고 싶네요ㅋ 별로 아직 명확한 비전을 보여주는 경제학자같진 않지만 대안으로써의 담론은 풍부히 가지고 계신 분인듯!
  • 벨루와 2012/11/14 11:44 # 삭제

    이런 대안을 현실화 시켜나가는 과정이 기대되면서도 걱정이 되긴 합니다. ^^
    그나저나 다른 글들도 정말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글솜씨가 보통은 아니신듯 합니다.
    이참에 글솜씨도 숙달할겸 나도 나만의 조그마한 블로그 하나 만들어볼까? 라고 생각을 하게 만드는 멋진 글들 같습니다.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 (부담갖지 마세요 ㅎㅎ)
  • 허남설 2012/11/14 13:28 #

    헐 부담이라뇨ㅋ 저도 글쓰기 연습 좀 할겸 이렇게 블로그 운영중입니다~ 확실히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익명의 사람들이 방문하긴해도, 책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려야한다는 책임감이 생기니 말이죠. 들러주셔서 가끔 말씀 남겨주세요^^ 감사합니다.
댓글 입력 영역


통계 위젯 (화이트)

21
23
488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