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르츠버거: 건축수업 books

「건축수업(원제: Lessons for students in Architecture」, 헤르만 헤르츠버거 저, 안진이 역, 효형출판, 2009

영화 <건축학개론>은 정말 뜻밖에도 대한민국 극장가를 강타하며 '첫사랑 신드롬'을 한껏 일으켰다. ‘뜻밖’이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 건축전공자의 입장에서 평소 ‘건축’에 대한 어떤 본능적인 자괴감 비슷한 것 때문이리라. '첫사랑'만큼이나 ‘건축’에 대한 이야기가 영화 속에서 주된 소재로 다뤄진 것은 사실 꽤 놀라운 사건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이 영화는 ‘건축학개론’, 그 자체인 면이 있다.

1) 영화 초반부에 승민과 서연은 교양과목인 '건축학개론' 강의실에서 만난다. 교수가 내준 첫 과제는 각자 자신이 사는 동네, 그 주변부터 찬찬히 알아보는 것이다. 교수는 그것을 '건축의 시작'이라 했고, 같은 동네에 살던 승민과 서연에게는 동시에 사랑의 시작이었다.

2) 바로 여기, 두 주인공이 같은 공간을 경험하며 애틋한 감정을 키워나가는 플롯plot이 건축적으로 상당한 의미가 있다. 첫 눈 오는 날 만나기로 약속했던 빈 집은 원래 단어 그대로 그저 '공간空間'이었지만, 두 주인공이 드나들며 공유함으로써 그들만의 '장소'가 되었고. 그 장소를 매개로 두 사람은 오랜 시간 간직할 ‘기억’을 만든다.

3) 같은 맥락의 건축적 과정은 다시 만난 두 사람의 상황에서도 재현된다. 승민이 서연 앞에서 처음으로 제주도 주택 설계안을 설명하는 장면에서, 승민은 오로지 건축전공자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온갖 거창한 언어로 말한다. 하지만 다시 서연과 가깝게 지내며 그녀를 이해하게 된 승민은 그런 언어들은 다 집어치우고, 그녀의 어린 시절 흔적들을 배려하는 세심하지만 소박한 집을 완성한다. 서연에게 정말 필요한 집에 대한 답은 다른 곳에 있지 않았다. 서연이 살았던 곳과 서연이란 사람 그 자체, 거기에 해답이 있었던 것이다.

건축전공자인 감독은 자신이 정립한 나름의 건축학개론을 이 영화 속에서 펼쳐 보였다고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건축, 정말 쉽게 하자는 거다. 기술적인 쉬움을 말하는 것이 아닌, 일종의 건축적인 답을 찾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결론적으로 답은 가까이에 있다는 것이다.

동의한다. 요즘의 건축가에게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섬세함’이라고 본다. 더 멋진 디테일Detail을 가져오라는 따위의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이 지금 작업하는 건축이 지니는 다양한 의미에 대해 섬세하게 탐구해야 한다. 섬세하게 자신이 건축할 대상의 주변부터 탐색해야 한다. 답은 가까이에 있다니까.

서연을 위한 주택을 설계한다면 승민처럼 섬세해야 한다. 학교를 설계한다면 학생과 교사들에 대해 섬세해야 한다. 도서관을 설계한다면 도서관이 사회적으로 갖는 의미와 역할에 섬세해야 한다. 기념관류의 건물을 설계한다면 그것이 상징하는 바에 섬세해야 하고, 행여 그것이 규모가 크다면 도시적으로 가지게 될 위상에 대해서도 섬세해야 한다. 그런데 ‘섬세함’이란 본능적인 매너 같은 것이지, 제목부터 머리 아픈 철학서적 같은 것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답은 늘 가까이에 있는 것이므로 들뢰즈나 데리다가 굳이 끼어들지 않아도 될 일이다. 건축물에서 철학자나 사상가의 흔적을 느끼는 일은, 단연코 없다. 누군가 그냥 그렇다고 우길 뿐이다.

네덜란드 건축가 헤르만 헤르츠버거Herman Hertzberger의 「건축수업(원제: Lessons for students in Architecture」은 체계적으로 ‘건축적인 섬세함’을 사색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건축은 결코 특별한 어떤 것이 아니다. 단지 모든 사람이 영위하는 생활 속 일상사에 관여할 따름이다.”(p.15) 건축학교에서 비슷한 말을 들어본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잊어버린 사람들이 많다. 여기저기 불쑥불쑥 솟아난 건축들이 이를 증명한다. 시청에서도 그랬다는 것 같고, 동대문에서도 그랬다는 것 같다. 용산 같은 곳은 조감도조차 참고 봐주기 힘든 모양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매우 유효하다고 생각하며 감히 필독을 권한다.

다시 시작하자, 건축학개론부터.

덧글

  • bckim 2012/11/16 15:47 # 삭제 답글

    더러운 계급로맨스 따위나 보고앉았다니 실망이다!!!!!!!!!!
  • 허남설 2012/11/16 16:56 #

    건축학개론이 왜 '계급'로맨스야? ㅋㅋ
댓글 입력 영역


통계 위젯 (화이트)

00
10
49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