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정승일∙이종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books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장하준∙정승일∙이종태 저, 부키, 2012


참 오래 고군분투 중인 사람들이다. 2005년, 장하준(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교수)∙정승일(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운영위원)은 「쾌도난마 한국경제」에서 한국이 스웨덴 같은 복지국가로 거듭날 수 있고, 또 거듭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 사이 한국에서는 한미FTA가 체결되었고, 대통령은 노무현에서 이명박으로 바뀌고 이제는 또 새로운 대선을 앞두고 있으며, 한국사회는 ‘경제민주화’ 내지는 ‘복지국가’가 빼놓을 수 없는 미래 화두로 자리잡았다. 아, 얼마 전에 “토사’종’팽”으로 연일 세간에 오르내린 분들에게는 해당하지 않을 수도.

어쨌든, 당시 이들의 예측은 옳았다.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으로 대표되는 월스트리트발(發) ‘금융 허리케인’이 세계 경제를 휩쓸자, 이에 비판적인 자칭 ‘99%’들은 길거리에서 장하준의 연설에 귀를 기울였다. 한국에서도 대체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이 끓어올라 그를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반시켰다. 이제, 장하준과 그의 오랜 동지인 정승일이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물론 장하준∙정승일이 생각하는 답은 하나다. 이들은 일단 주주자본주의 내지는 금융자본주의의 규제를 주문한다. 단기수익성 위주로 경제를 운용하는 주주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는, 당장의 수익성에 집중하다 보니 해당산업 혹은 대체산업의 장기적인 전망을 내다보며 R&D 등에 투자하는 전략구축이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미래를 대비하는 산업의 성장자체가 가로막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노동의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다. 역시 당장의 생산성을 높이려다 보니 비정규직 활용과 정리해고가 난무하며 보통 사람들의 삶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그러다 보니 똑똑하고 유능한 인재들이 오로지 의사∙변호사∙공무원 등 안정만을 찾아 다니는 신세가 된다. 당연히 국가적 차원의 기술력 축적이 제대로 이뤄질 리가 없다. 이렇듯 한 국가의 성장 자체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역동적’ 주주(금융)자본주의는 규제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이 자본주의를 규제하거나 조금 수정한다고 해서 그 본성이 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당장은 잠잠한 듯 보여도 역습의 가능성이 상존한다. 대비책은? 다름 아닌 복지국가다. 장하준∙정승일에 따르면 복지는 생산과 분배의 ‘선순환 시스템’이다. 논리는 간단하다. 대부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산업고도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구조조정이 필요한데 이것이 복지제도 없이 가능하냐는 거다. 그리고 이 때의 ‘복지제도’라는 것은 단순히 ‘실업수당(분배)’만을 뜻하는 것이 아닌 ‘직업재교육(생산)’까지 포괄하는 적극적인 개념이다. 이른바 ‘생산적 복지’다.

장하준∙정승일의 주장은 아주 단순한 논리구조와 주류경제학에서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상식적인 수준의 해법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이 한국사회에 받아들여지는데 왜 이렇게 난항을 겪고 있을까? 그것은 이들이 ‘관치’와 ‘(재벌과의) 사회적 대타협’을 복지국가로 향하는 방법론으로 삼고 있는데 연유한다.

장하준∙정승일은 억울해한다. 또 한국의 소위 경제민주화 세력이 대부분 진보∙좌파임을 자임하면서도 ‘관치’에 극도로 거부감을 보이는 행태에 어이없어한다. 유럽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란다. 주된 원인은 ‘박정희’로 대변되는 강력한 국가권력에 대한 트라우마 탓일 게다. 더군다나 두 사람은 박정희 시대의 산업정책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기까지 하니 말이다. 하지만, 사실 오해는 간단히 풀린다.

「쾌도난마 한국경제」에서 우리는 ‘박정희식의 경제 정책은 필요했으나 그게 반드시 박정희라는 개인일 필요는 없었다’고 누누이 강조한 바 있습니다. (장하준, p.175)

...... 우리가 원하는 건 제대로 된 관치에요. 금융시장과 주주 자본주의를 일관된 원칙을 가지고 통제∙규제하고, 산업 정책과 정책 금융을 일관된 원칙과 가이드라인에 입각해 시행하는 그런 관치와 그런 경제 관료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정승일, p.187)


이들이 보기에 현 경제민주화 세력은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주주 자본주의 체제를 도입하고 강화해온 장본인이다. 그 시절엔 박정희 체제의 유산인 재벌을 해체하여 그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주주들에게 그 권한을 배분하면 한국 경제가 현대화되리라는 생각이 팽배했다. 지금이라고 다르진 않다. 여전히 경제민주화 정책의 핵심으로 거론되는 ‘금산분리’, ‘순환출자금지’ 등은 곁가지 혹은 헛다리다. 그런 식으로 재벌을 약화∙해체시켜 자유시장에 던져놓으면, 해외 투기자본의 먹잇감이 될 뿐이라는 것이 우리가 김대중 정권 이후에 계속 겪어온 오류다. 하이닉스나 쌍용차 사태가 그 대표적인 예다. 따라서 현실적인 필요에 입각한 재벌체제의 보호가 요구된다.

정부가 하는 건 인위적인 거고, 한국에 들어오는 외국 투기 자본이 하는 건 인위적인 게 아니란 말인가요? 그건 그냥 시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건가요? 그런 시각 자체가 왜곡된 겁니다. (장하준, p.103)

재벌을 보호하자고? 장하준이 오랜 외국 생활 탓에 뭘 모르고 하는 소리인가? 아니다. 그 역시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시작된 삼성 특검도 알고, 산재인정도 받지 못한 채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노동자들의 눈물도, 골목상권을 침해 당한 영세자영업자들의 고통도 안다. 재벌이 전횡하는 경제권력의 부작용 일반에 대해서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재벌이 현 한국사회에서 법적으로 비가시적인 존재라는 거다. 엄연히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은근히 군림하려다 보니 법의 테두리 밖에서 사고를 친다. 그러니 이들이 그러면서까지 누리고 싶어하는 것, 즉 기업집단에 대한 경영권을 인정하자. 대신 우리는 요구하자. 지속가능한 경제 운용을 위한 산업개발과 복지국가를.

명쾌하다. 스웨덴∙덴마크와 같은 좋은 선례도 알고 있다. 진보가 좋아하는 보편적 복지의 실현으로 우리 삶은 한결 여유로워지고, 보수가 좋아하는 산업고도화의 기틀을 마련해 성장도 하고. 꿩 먹고 알 먹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대타협의 가능성이 충분해 보인다.

그런데 이미 2005년 「쾌도난마 한국경제」에서부터 되풀이된 이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정서적 측면이 가장 커 보인다. 그 동안 재벌이 내보인 온갖 특권과 특혜의식, 탈법∙편법에 대한 추억(?), 이것이 그들을 타협의 대상으로 생각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명박 정부의 국무총리였던 정운찬의 동반성장위원회가 제기했던 ‘초과이익공유제’에 ‘발끈’했던 한 재벌회장의 모습에 정서적으로 불편함을 느꼈던 이들이 많다. 그들이 정말 우리와 복지국가의 미래를 함께할 수 있단 말인가.

'타협’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일을 서로 양보하여 협의함’이다. 그렇다. 문제는 양보다. 재벌에 민감한 우리의 정서를 잠시 제쳐두면 복지국가를 향한 첫걸음을 뗄 수 있다. 일정한 특권보장을 담보로 제도를 강제함으로써 재벌의 책임 있는 반응을 기대해 봄직하다. 타협이란 모름지기 그런 것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는 현 시점 한국사회에서 가장 ‘실용주의’적인 제안이다. 물론, 현재로선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측면에서 그렇다.


덧글

  • 플라잉휠 2012/11/19 13:29 # 답글

    독후감 잘봤습니다. 책을 사서 보고 싶을 정도로 소개를 잘해주셨네요.
  • 허남설 2012/11/19 14:20 #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_ _) 이 책, 정말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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