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 모피아 books

「모피아」, 우석훈 저, 김영사, 2012

아주 오랜만에 소설을 집었다. 그 이유는 전적으로 이 소설의 작가가 우석훈이라는 점에 있다. 그는 그 유명한 「88만원 세대」(박권일 공저)로 대한민국에 세대론을 띄운 장본인이다. 알다시피 전공은 경제학. 아니, 경제학자가 왠 소설?

그가 소설을 택한 이유가 있다. 하고픈 이야기의 소재가 ‘모피아Mofia’인 탓이다. 모피아. 재정경제부Ministry of Finance에 영화의 단골손님인 마피아Mafia를 합성한 단어다. 이 땅에는 고시를 패스한 똑똑한 재정경제부 출신 관료들이 회전문 인사 등을 통해 한국 경제를 음지에서 주무르고 있다는 의심이 팽배하다. 아니, 거의 사실로 믿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 실체를 명확히 밝히는 데는 한계가 있다. 앞서 말했듯이 그들의 활동무대가 ‘음지’인 탓에 그렇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흔히 마피아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그래서 우석훈은 소설을 쓸 필요가 있었다. 인기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의 진행자들은 늘 온갖 의혹을 제기하면서 덧붙인다. “소설을 써보면” 허위사실 유포 등의 법적인 제재를 피해가기 위한 일종의 ‘꼼수’다. 다행히 이 땅에 아직 그 정도 꼼수를 부릴 자유는 있다. 우석훈은 이를 근거로 소설의 형식 위에, 모피아가 어떻게 한국 경제를 주무르는지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쳤다.

이야기의 무대는 우리가 이제 곧 치르게 될 제18대 대선에서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의 상황이다. 한국은행 팀장 출신인 주인공(오지환)이, 공기업 외환표시 채권보유를 무기로 대통령으로부터 경제권력을 찬탈한 모피아 출신 이현도를 상대로 벌이는 싸움이 주된 줄거리다. 그 사이에서 이현도 일파이자 국제 로비스트인 김수진이 오지환과 사랑에 빠지면서 일종의 ‘키key’역할을 한다. 비밀을 풀어가는 전형적인 구도다.

유감스럽게도 소설 속의 줄거리는 말 그대로 소설일 뿐이다. 모피아의 실체를 저자의 픽션 그대로 단정짓기는 어렵다. 다만, 저자가 유명한 경제학자인 덕에 여기저기서 종합한 정보가 뒷받침되었다는 정황이 있을 뿐이다. 어쨌든 그것은, 모피아든 누구든 음지에서 양지를 조종하는 집단의 존재가능성을 합리적 의심의 대상으로 만든다.

골치 아픈 현실 연관성에 관한 담론은 여기까지. 소설은 어디까지나 소설이다. 장르를 고려한 비평 역시 필요하다. 우석훈의 소설 데뷔작, 사실 그다지 잘 썼다고 보긴 어렵다. 서두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최초의 구상은 영화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었다고 하는데, 그 흔적이 곳곳에서 어색하게 드러난다. 방대한 시공간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영상에서 글로 바꿔 써내려다 보니 발생한 문제다.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한 부분은 빠른 속도의 내용 전개가 만들어내는 긴장감 정도인데, 이 역시도 모피아와의 자금 전쟁이 본격화되는 3부 정도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다. 문제는 '디테일'에 있다.

특히, 오지환과 김수진이 스위스에서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은 그들이 외로운 중년임을 감안하더라도, 앞뒤 맥락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그들의 사랑이 전체 플롯에서 가지는 비중을 고려하면 이 점은 매우 아쉽다. 김수진의 미국 자택에 ‘슈터’가 등장하는 장면도 긴장감이 떨어진다. 영상이 드러낼 수 있는 표현과 글이 가진 표현의 한계를 좀 더 섬세하게 다뤘어야 했다. 그 감수성을 미처 인지하지 못 했다면, 소설가로서의 우석훈에게 좋은 점수를 주긴 어렵다. 좋은 플롯을 읽는 재미가 곳곳에서 반감되어 버리는 느낌이다. 이런 어설픔이 혹시 대선 전 출간을 염두에 둔 성급함에서 비롯된 건 아닌지 싶을 정도다. 아쉬워서, 그것도 많이 아쉬워서 하는 말이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


통계 위젯 (화이트)

00
10
49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