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러미 리프킨: 3차 산업혁명 books

「3차 산업혁명(원제: The Third Industrial Revolution)」, 제러미 리프킨 저, 안진환 역, 민음사, 2012


제목을 잘못 붙였다. 제러미 리프킨이 「3차 산업혁명(원제: The Third Industrial Revolution)」에서 그린 미래구상은 1·2차 산업혁명에 이은 ‘3차’라고 하기에는 그 성격의 차원을 달리하는 어떤 것이다. 그 새로운 세계를 저자는 ‘분산 자본주의’라 칭했다. 이 역시 잘못됐다. 그것이 더 이상 자본주의의 작동원리를 따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말이다. 10여 년 전쯤 <세계사회포럼>에서 유행했던 구호가 떠오른다.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저자가 이렇게 외치는 것만 같다.

제러미 리프킨이 말하는 ‘3차 산업혁명’을 간략한 문답식으로 정리해보자.

Q. 지금의 문제는?
A. ‘엘리트에너지원(석탄․석유 등 화석연료에 대한 저자의 표현)’에 의존하는 1·2차 산업혁명이 둔화되고 있다. 불안한 에너지 공급체제가 만성적 실업, 치솟는 국가 부채, 여전한 빈곤 등 경제적 모순을 점점 심화시키고 있다. 심지어 지금은 기후변화라는 종말의 그림자마저 드리워있지 않은가.

Q. 그렇다면 대안은?
A. 역사상 혁명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에너지체계가 결합할 때 발생한다. 인터넷 등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등장에 주목하라. 그리고 이를 새로운 탈-탄소 에너지체계와 결합시키면 막대한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다. 그것은 ‘수평적 권력’의 탄생을 의미한다. 핵심은 ‘20세기의 전통적이고 중앙집중화한 에너지에 계속 의존할 것인가, 아니면 21세기의 분산형 에너지로 장기적 이행을 시작할 것인가.’로 요약할 수 있다.

Q. 구체적인 방법은?
A. 책에서 ‘3차 산업혁명의 다섯 가지 핵심요소’를 언급하고 있다. 첫째,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할 것. 둘째, 모든 대륙의 건물을 재생가능에너지를 생산하는 미니발전소로 변형할 것. 셋째, 수소저장기술 등 저장기술을 보급하여 불규칙적인 재생가능에너지 수급을 보완할 것. 넷째, 인터넷 기술을 활용하여 모든 대륙의 에너지 공유 인터그리드를 만들 것. 다섯째, 교통수단을 전기차량으로 교체하고 여기서 사용되고 남는 에너지 등을 사고팔 수 있는 양방향 스마트 동력 그리드를 만들 것.

저자는 이러한 ‘에너지 민주화’가 인류의 삶을 총체적으로 바꿀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이제는 ‘효율성’대신에 ‘협업’, ‘중앙집권형’보다는 ‘네트워크 및 공유’가 주요 패러다임인 시대로 말이다. 또 이미 ‘짚카(Zipcar)’등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경제모델(공유경제)에서 보듯, 상품 및 서비스에 대한 ‘접근’이 ‘소유’를 대신할 것이라 예측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패러다임의 세계에는 자본주의라는 수식어가 어울리지 않다는 점이다. 고로 저자의 선언은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만큼이나 도발적이고 급진적이다. 어떤 면에서는 사회주의와 철학을 공유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이 변화가 ‘혁명’일 것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질문이 떠오른다. “마르크스에게 조직화된 노동계급이, 레닌에게 혁명적 전위정당이, 그람시에게 헤게모니의 진지전이 있었다면, ‘3차 산업혁명’은 무엇을 그 추동력으로 내세우는가?” 저자의 답은 간단하다. “대규모의 정부 투자(공적자금 투자)”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협력”

저자의 답이 단호하리만치 단순해서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책의 상당부분은 저자가 각국의 지도자를 만나 어떤 식으로 ‘3차 산업혁명’에 대한 투자를 이끌어냈는지 설명하는 개인적인 무용담(?)으로 가득할 뿐이다. 그 가운데 분명 괄목할만한 성과도 눈에 띄지만, 이 거대한 전환을 준비함에 있어 저자의 관점이 다소 태평해 보이는 것 역시 분명 아쉬운 부분이다.

저자가 이전 저작 「유러피언 드림(원제: The European Dream)」에서부터 줄곧 기대를 품어왔듯이, 유럽연합(EU)이 저자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변화의 선두에 서있는 것은 현재로선 사실이다. 하지만 전지구적 반향을 불러내기에는 그의 ‘엘리트주의’적 활동반경이 2% 부족해 보인다. 유럽연합 자체로도 이런 혁명을 수행하기에는 이미 온갖 정치·경제 위기에 봉착해있어, 그 지도층에서 내부의 갈등을 조율하는 작업에만도 상당한 에너지를 소비할 처지에 있다. ‘3차 산업혁명’이 장기적인 이행과정을 염두에 둔 것일지라도, 그 청사진이 지금 체제의 심각한 반발을 부를 것은 뻔하다. 저자가 책에서 언급하듯, 미국의 경우 이미 석유기업의 로비에 상당한 압력을 받는 실정이니 말이다. ‘3차 산업혁명’ 역시 그 추동력과 반동력 사이의 치열한 알력다툼을 비껴갈 수 없을 것이다. 그에 대한 전술적 대비 또한 성공적인 혁명의 덕목이다.

지금의 절박한 위기ㅡ경제적 악순환, 기후변화에 따른 종말의 징후 등ㅡ를 타개할 방법이라면 그 역시 그만한 절박함을 지님이 마땅할 터다. 한가로운 당위론에만 기대는 혁명은 그야말로 기계적인 낙관에 불과하다. 따라서 나는 보다 많은 대중이 이 책을 읽길 바란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수명을 다해가고 있는 이 체제의 위기를 알고, 그에 대한 경각심을 세우길 바라며 말이다. 그 결론은 굳이 저자가 제시한 ‘3차 산업혁명’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문제는 혁명에 필수적인 다수의 목소리가 존재하는지 여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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