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books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민음사, 2013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조화’에 대한 이야기다. 이름에 ‘색채’를 뜻하는 한자가 없는 주인공 다자키가, 이름에 색채가 있는 네 친구와의 과거와 현재를 더듬으며 자신과 그들과의 조화를 따져본다. 네 친구, 아카(赤)·아오(靑)·시로(白)·구로(黑)와 달리 이름에 색채가 없음에 남몰래 콤플렉스를 가졌던 쓰쿠루에게 스무살에 닥쳐온 이들의 이별 통보는 꽤 고통스러웠지만 한편으론 운명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쓰쿠루는 망각을 택했다.

쓰쿠루의 망각은 서른여섯살 때 연인 사라가 나타나면서 끝난다. 사라는 쓰쿠루에게 그 과거가 현재에도 어떤 연쇄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사라는 쓰쿠루가 얽매여 있는 과거를 풀어야만 함께 미래로 갈 수 있다고 믿는 듯 했다. 쓰쿠루는 과거의 사건들을 찾아 동시간대의 순례를 떠난다.

과거를 찾아간 현재의 순례는 결국 과거와 현재의 간극에 걸쳐 있는 시간의 벽에 부딪친다. 그래도 쓰쿠루는 순례의 마지막 코스, 핀란드의 어느 한적한 시골에서 살고 있는 구로를 만나서는 “영혼의 맨 밑바닥에서 이해했다”며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은 상처와 상처로 깊이 연결된 것”임을 깨닫고, 또 “비통한 절규를 내포하지 않은 고요는 없으며 땅 위에 피 흘리지 않는 용서는 없고, 가슴 아픈 상실을 통과하지 않는 수용은 없다”며 “그것이 진정한 조화의 근저”임을 주장한다. 시간이란 벽을 사이에 두고도 연결고리가 전혀 없지는 않은 셈이다. 쓰쿠루는 “모든 것이 시간의 흐름에 휩쓸려 사라져 버리지는 않았어”라고 혼자 되뇌인다.

쓰쿠루의 마지막 독백은 지난 수면 아래 고통과 침묵, 그리고 새로운 깨달음의 희열이 교차하기에 미완성이다. 형이상학적인 조화의 끈을 발견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기는 했지만, 현실에서 그 조화의 끈은 보이지 않는 형상의 어떤 것이다. 시간은 계속 미래로 가고, 조화롭지 못했던 과거는 응어리진 채 따라온다. 흑백(黑白)으로 명확했던 구로·시로와 조화를 이루지 못했고, 회색분자인 하이다(灰) 역시 말없이 떠났다. 쓰쿠루는 여전히 연인 사라와 조화를 이루는 데 미숙하다. 색채가 없는 쓰쿠루는 다른 색들과의 조화를 갈구해야 하는 가여운 운명을 타고 났다. 그래서 우리는 쓰쿠루란 주인공을 마음 깊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기에 “하루키가 리얼리즘으로 귀환했다”는 출판사의 서평에 공감한다. <노르웨이의 숲>을 떠났던 하루키가 인간 세계로 돌아왔다. <해변의 카프카>를 만나고 <1Q84>를 지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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