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 빨간 도시 books

빨간 도시, 서현, 효형출판, 2014

10여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천성산 터널 논쟁이 있었다. 터널 공사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터널 만들면 지금 거기에 살고 있는 도롱뇽 다 죽는다”며 “우회도로를 건설하라”고 주장했다. 한 종교인은 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뼈가 앙상하게 드러나도록 단식 투쟁을 했다. 토목업계에서는 “공사 중단으로 인한 연간 손실이 2조”라며 “우회도로 건설은 시간적·경제적 낭비”라고 호소했다. 결국 당시 대통령이 나서 천성산 터널 공사는 원점에서 검토됐다.

환경보호와 경제적 효용이라는 화해할 수 없는 두 가치. 이들의 다툼은 토목 공사를 두고 늘 반복된다. 그런데 누군가 여기에 대고 “산을 돌아가는 우회도로가 산을 뚫고 가는 터널보다 더 친환경적인가?”라고 묻는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이때 원점에서 검토될 것은 터널 공사가 아니라, “터널은 반환경적”이라고 자신도 모르는 새에 동의했던 우리의 인식 ‘틀’일 것이다. 서현 교수(한양대학교 건축학과)의 <빨간 도시>는 이런 ‘틀’을 비틀고 부수려는 불온한 목적으로 가득찬 책이다. 그래서 표지가 빨간 모양이다.

저자 스스로 “건축을 통해 본 세상의 목격담”이라 밝힌 이 책은 현재 우리 도시와 건축의 물리적 형태가 나오게 된 틀, 배경 자체에 주목한다. 예컨대 우리가 다닌 초등학교의 모습이 어디든 딱딱하고 획일적인 것은 일제강점기에 이식된 ‘군사적’ 교육철학이 여전히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 정체 불명 양식의 요란한 예식장 건물은 유럽과 유교적 전통과 신데렐라 컴플렉스를 넘나드는 우리의 결혼 문화를 바탕으로 한다. 병영과 잡종, 이 같은 배경이 각각 오늘날 딱딱한 학교와 요란한 예식장을 계속 찍어낸 틀인 셈이다.

이처럼 저자는 이 도시의 풍경 곳곳에 깔린 배경을 하나씩 밝혀낸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아파트, 그리스·로마 신전마냥 엄숙한 도서관, 고속국도변 광활한 평야에 우뚝선 러브호텔, 풍경보다 ‘뽕짝’소리를 먼저 감상하게 되는 휴게소, 시민은 다가서기 힘든 국회의사당 등 모든 익숙함 뒤에는 우리의 어떤 고정된 틀이 자리잡고 있다. 이 틀을 건드리지 않는 한 변화나 진보는 없다.

우리 도시와 건축의 물리적 표현은 늘 틀에 대한 고민에 앞서왔다. ‘새롭거나 낡았거나’, ‘크거나 작거나’, 혹은 ‘예쁘거나 못 생겼거나’하고 표현만 따지는 것은 ‘새로 만난 가슴이 크고 얼굴이 예쁜 여자’라는 서술만큼이나 표면적이고, 이에 남성들이 지닌 환상만큼이나 중독적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별다른 고민없이 한강에, 동대문에, 용산에 ‘해외 유명 건축가’라는 새로움 외엔 모든 조건이 같은, 말 그대로 ‘틀에 박힌 그림’을 그려놓고 끝내 망가지는 것을 지켜봤다. 비단 거대 프로젝트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틀이 바뀌지 않는 한 학교, 교회, r관공서, 숙박업소 등 도시 곳곳에서 실패는 반복될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덧글

  • bckim 2014/02/09 20:54 # 삭제 답글


    읽어보진 않아서 좀 조심스럽지만,

    기-승-전-해외유명건축가 이 레퍼토리야말로 익숙하고 고정된 틀인거같은데여...

    서평이 그런건지 책이 그런건지 한번 뜯어봐야겠네여
  • NSHEO 2014/02/09 23:03 #

    댓글이 왜케 얄밉지ㅋㅋㅋㅋ 뜯어보세요
댓글 입력 영역


통계 위젯 (화이트)

11
9
48946